록산 게이의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헝거 Hunger>를 읽기 전, 그녀의 테드(TED) 강연 영상을 먼저 찾아봤습니다. 화면 속에는 <헝거>를 통해 고백하려는 그 몸, 190cm에 150kg이 넘는 몸으로 반듯이 서서 청중의 공감과 웃음을 수시로 끌어내며 우아하게 말하는 '나쁜 페미니스트'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의 추천사를 꼼꼼히 읽고 나니 "더 이상 혼자 웅크려 있을 장소가 필요 없고, 그런 장소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준 나의 선샤인, 당신에게"라는 문장이 나타납니다. 한 장을 더 넘기자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다"는 첫 문장이, 그 뒤로는 지독하게 솔직한 고백들이 쏟아집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터져 나오는 깊은 한숨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읽고 멈추고, 읽고 멈추고, 수시로 눈이 질끈 감겨요. 엄청난 고백들을 담담한 목소리로 듣자니 더욱 고통스럽고요. 그런데도 계속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록산 게이의 고백 속에서 저와 제 친구들의 목소리가 자꾸 들리니까요. 속으로 수없이 말했지만 한 번도 들려지지 않은 여러 목소리가 자꾸 행간을 비집고 나오니까요.
/
(59쪽)
•  '폭행 사건' 혹은 '폭력' 혹은 '사건'처럼 무심하고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 앞으로 나서서 나는 열두 살이었고 그때 내가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소년과 그의 친구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나는 열두 살이었고, 그해에 성폭행을 당했다.
   성폭행을 당한 후 수많은 세월이 흘렀기에 나 스스로에게도 내게 일어난 그 일을 '과거의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너무나 많은 면에서 그 과거는 아직도 나와 같이한다. 내 몸에 그 과거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매일같이, 하루도 빠짐없이 그 과거를 데리고 다닌다. 가끔 이 과거가 마치 나를 죽일 수도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라는 짐은 진정 무겁다."

Posted by 쓰는_사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