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만듦새가 예뻐서 읽기 전에 출판사 이름부터 찾아봤다. 한국에서 굉장한 인기 작가지만 나는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마스다 미리'의 책을 꾸준히 내는 곳이었다. 이름은 '이봄' . 표지와 본문에 조금씩 들어간 일러스트도, 숫자에 쓰인 cooper 폰트도, 디자인에 민감한 독자에게는 책 읽는 재미를 더하는 요소였다.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이봄, 2018)에는 "머리는 새하얗지만 분홍빛 뺨에 반짝반짝 윤기 도는 피부, 초롱초롱한 눈, 청청한 귀, 튼튼한 허리와 다리, 훌륭한(?) 입"을 가진 아흔 살 할머니, 모모요가 등장한다.

1. 호텔에 혼자 숙박하기
2. 우에노 동물원에 판다 보러 가기
3. 도쿄 돔 견학하기
4.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놀기
5. 할머니의 하라주쿠에서 쇼핑하기

시골에서 혼자 도쿄에 상경하는 아흔 살 할머니의 목적이 이런 것들이라니. 그 나이에도 환갑 딸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스포츠 선수의 이력을 다 외우고, 몸매 관리를 위해 자식들 몰래 줄넘기를 하는 할머니라니. '말도 안 되지만 흥미로운 캐릭터네' 생각하며 끝까지 다 읽었다.

그런데 소설이 아닌 에세이였다니. 표지에서 분명 '무레 요코 에세이'라는 문구를 봤는데도 소설로 읽다니. 잠깐 멍했다가 이내 기뻤다. '카모메 식당'의 작가 무레 요코의 실제 외할머니 이야기인데, 에필로그가 끝나고도 2편의 글이 더 실려 있었다. <모모요 네버엔딩 스토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야기의 제목은 '아흔세 살의 모모요', '모모요, 아직 아흔다섯 살'. 1995년에 초판이 나온 후로, 아흔다섯에도 여전히 건강한 모모요 할머니의 근황(?)이 계속 추가된 것. 모모요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는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알 수 있다.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아흔 살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NHK의 다큐 <미야자키 하야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화감독으로서 은퇴를 선언하고, 촬영 당시 75세였던 하야오 감독은 다시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지인들의 연이은 부고 소식에 충격을 받고 "난 누가 뭐래도 노인이야. 이제 다 끝난 인생이라고!" 같은 말을 수시로 내뱉으면서도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수백 장의 손그림을 그리고, 직접 핸드드립 커피를 만드는 노인이 거기 있었다.

"이거 어렵네!"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쉬지 않고 연구하는, "나이 많은 감독들은 다른 걸 하느니 차라리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쓰레기를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새로운 걸 만들고 싶어요. (중략) 영화를 끝나기 전에 세상을 떠나도 괜찮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하다 가느니 차라리 일을 하다 갈 겁니다. 보람 있는 일을 하다 가는 거죠"라고 말하는 백발의 청년이 거기 있었다.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의 역자 후기에서 권남희 번역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흔 살 할머니보다 더 노인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드는 것 같다"고. 아흔 살 모모요와 일흔 다섯 살 하야오 감독을 보며 정말로 정신이 번뜩 들었다. 도전 정신 투철한 그 어떤 청년보다 더 큰 에너지를 두 노인의 일상에서 보았다. 이들처럼 씩씩하게 살고 싶다. 나이, 노화 따위는 간단히 무시하고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노인으로, '나조차도 믿기 어려울 만큼' 건강한 노인으로 살고 싶다. 갑자기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올봄엔 운동해야지.

Posted by 쓰는_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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