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똥>(길벗어린이, 1996)이라는 책, 읽어보셨어요? 무척 유명한 동화지만 저는 며칠 전에 처음 만났어요. 돌이네 흰둥이가 골목길 담 밑 구석에 싼 똥, 그 똥이 주인공인 이야기예요. 책을 펼치자마자 이 글을 읽을 아이들의 표정이 상상돼서 웃음이 났어요. '똥'이라는 말만 들리면 배꼽을 잡고 웃는 조카들이 제게는 여섯이나 있으니까요 :)

'똥'으로도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아서 좋았고요. 이야기를 지은 분이 궁금했는데, 동화 뒤에 이어지는 아동문학 평론가 이재복 선생님의 글에서 힌트를 발견했어요.


어느 날이었던가, 선생님은 처마 밑에 버려진 강아지똥이 비를 맞아 흐물흐물 그 덩어리가 녹아내리며 땅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그런데 강아지똥이 스며 녹아내리는 그 옆에서 민들레꽃이 피어나고 있더랍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고 "아, 저거다!"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며칠 밤을 새워 강아지똥 이야기를 썼답니다.


'강아지똥과 같이 저렇게 보잘것없는 것도, 남들에게 천대만 받는 저런 것도 저렇게 자신의 온몸을 녹여 한 생명을 꽃피우는구나.' 권정생 선생님은 이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고, 그 감동에 눈물을 흘리며 강아지똥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ㅡ 이재복 (아동문학평론가)


놀라운 발견이죠? #권정생 선생님은 자신의 온몸을 녹여 한 생명을 꽃피우는 강아지똥을 발견하고 "왕자나 공주가 아니라 '강아지똥'과 같은 운명을 살아야 했던 우리 겨레의 끈질긴 생명 의식"을 동화에 담아냈어요.


권정생 선생님과 닮은 또 한 분의 선생님이 떠올라요. 스탠퍼드대학교의 교육공학자 폴 김(Paul Kim) 선생님인데요, 전쟁, 집단 학살 등의 비극이 있었던 지역을 방문해 그곳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분이에요.


문학평론가 함돈균 선생님과의 대담집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세종서적, 2017)에 '천일스토리'라는 프로젝트가 등장하는데, 학교도 책도 없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아이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게 되었다는 내용이에요.


• 폴 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스토리텔링 워크숍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를 모았어요. 르완다의 HIV-에이즈 소년에 대한 이야기, 우간다 소년 군인에 대한 이야기, 난민촌에서 받아 온 스토리,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받아 온 이야기, 인도의 비하르 같은 곳의 벽지에서 받아 온 불가촉천민 이야기, 멕시코 분쟁 지역에서 받아 온 스토리,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국경에 살고 있는 원주민에게서 받아 온 스토리, 모든 이야기를 모아서 번역을 한 다음 영어로 또는 그 나라의 말로 또는 원주민 말로 책을 다시 출간해서 그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었죠. 또 번역된 스토리들은 다른 나라에 가져가서 다른 나라 아이들이 읽게 했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글어내고 글로벌 이슈에 대해 이해하게 했죠. 그 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스토리를 편집할 기회를 주어서 그들이 아이의 사진을 보면서 번역한다든지 편집한다든지 스토리에 맞는 그림을 그린다든지, 재능 기부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많이 확보했어요. (192-193쪽)


이렇게 만든 책들을 선생님은 미국의 아이들에게 전달했어요.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닌, 다른 나라 아이들이 쓴 진짜 이야기를 읽게 하려고요. 미국 아이들에게는 뉴스로만 보던 사건이 실재한다는 감각을,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학교도 책도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는 자기 얼굴이 붙은 '내 책'을 갖게 되는 경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천일스토리(1001 story)'예요.


<강아지똥>과 '천일 스토리'의 공통점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각 나라의 역사와 그 역사 속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는 데 있어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삶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왕자나 공주가 아니어도, 1등이 아니어도, 강아지똥처럼 하찮은 모습이라도, '지금 내 모습 그대로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어린이 그리고 어른이 가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 권의 책을 이어봅니다.



Posted by 쓰는_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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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tsokay 2018.03.06 2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정생 선생님이 울면서 쓰셨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ㅠ 다시 읽어야겠어요. 그리고 다른 책, 제목과 표지만 보면 저는 그냥 지나칠 책이었는데, 쓰는사람님 덕분에 읽고싶은 책이 생겼어요! 개개인의 서사가 만들어내는 힘. 뭔가 요즘 생각하는 주제와 만났네요. 고마워요. 언두북스!! (몇 시간마다 한 번씩 들어와 글 읽고 댓글 달아요. 한번에 다 읽으면 아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래서. 야금야금. 아껴 읽고 댓글 달아요.)

    • 쓰는_사람 2018.03.19 1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실한 댓글 인정! ㅇㅈㅇㅇㅇㅈ :) 강아지똥 뒷이야기는 저도 이번에 알았어요. 폴킴 교수 책에서는 적용해보고픈 아이디어가 참 많은데 우리 교육 현실에서 풀기엔 너무 어렵기도 하고. 그래도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