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벅으로 후원하고 출간을 기다려온 책,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도서출판 여이연, 2018)를 며칠 전 받았습니다. 밀어주기 버튼을 누르면서 생각했어요. 제목이 된 저 문장의 주어에 어떤 누구라도 넣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부제는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이고, 8명의 공저자 중 첫 번째로 소개된 이소희는 성판매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은 일들과 그 일들이 있게 한 사회 구조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일기처럼 적어" 내려갔습니다.

이 책을 보며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엄마의 지인이었고,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모~'라는 호칭으로 불렀던, 제가 아직도 좋아하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스웨터를 선물해준 사람.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 이모가 떠올랐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소식을 계속 들었는데, 한동안 소식이 끊겨 엄마도 저도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작은 여관방에서 혼자 앓다 돌아가가신 것 같다는 마지막 소식을 듣고 엄마와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모는 '성판매 여성'이었습니다. 짧게는 설명할 수 없는 사연으로 성을 판매하는 직업을 갖게 됐는데, 성병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직업이 드러날까 제대로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주변에 아프다고 연락도 못 한 채, 혼자 고통스럽게 앓다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늘 따뜻하고 다정했던 이모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모도 말하고 싶었을 텐데. 그때의 내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이모가 아직 살아있다면, 나라도 이모의 말을 들어줬더라면. 책을 읽으며 실현할 수 없는 조건들을 자꾸 되뇌었습니다.

이 책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이 책의 독자들만큼은 제목이 된 저 문장의 주어로 누구라도 넣을 수 있었으면, 이 조건들은 부디 실현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1-12쪽)
'창녀'에 대해 좀더 생각해 봅시다. '창녀'는 이 사회에서 매우 납작하게 소비되어버리고 마는 존재입니다. 보통 사람의 머릿속에서 '성판매 여성'의 이미지는 일상과 크게 괴리되어 있습니다. 으레 이렇게 화장하고 성형한 외모일 것이며, 옷은 이렇게 입을 것이고, 특정한 말투로 말하고, 전형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짐작해버립니다. 실상 그들의 실제 감정과 생각이 어떤지에는 별로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숨겨진 존재이므로, 딱히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일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는 이 사회가 그들이 어떤 평범한 일상을, 때로는 비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자신들이 받는 '창녀 취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삶을 살기 위해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은 어떤 식으로 꾸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이소희는 그렇게 으레 관심 없어 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자신의 작은 '영토'로 삼았습니다. "힘껏 외치는 투도 아니고 싸우는 투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만나 보아도, 그는 작은 목소리로 조용조용하게 말합니다. 그가 운영하는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의 글들도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들과 그 일들이 있게 한 사회 구조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일기처럼 적어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기 같은 글을 읽고는 '성판매 여성'이 납작한 존재가 아닌, 다면적인 존재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이고 늘어나 어느덧 오천 팔백 여 명의 사람들이 그의 글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Posted by 쓰는_사람

댓글을 달아 주세요